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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문의 우울 남을 보여주기 위해 쓰지는 않지만, 누군가 읽을 경우를 감안해서 쓴다. 내 친구는 언젠가 ‘일기’를 이렇게 정의했다. 자신의 일기에조차 솔직할 수 없는 우리 처지에는 쓴웃음이 났지만, 그 후로도 이보다 나은 정의는 들어본 바 없다. 언제나 누군가에게 들킬 상황을 의식하며 쓴다. 과시적인 태도로 감정을 과장하고 생각을 부풀린다. 무수한 자기 검열과 혼자만 아는 상징으로 범벅이 된 옛 일기를 읽고 있자면 스스로에게 솔직하기란 몹시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지만, 온전한 진실을 전달하지도 않는다. 변명답지 않게 변명하기 위해 세심하게 말을 고르는 나를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었다. 나는 좀 다를 줄 알았다고, 보다 솔직해지면 어떠냐고 했다. 나를 마음껏 할퀴고 상처를 주고 싶었다고, ..
내 사랑은 / 허연 내 사랑은 / 허연 내가 앉은 2층 창으로 지하철 공사 5-24공구 건설현장이 보였고 전화는 오지 않았다. 몰인격한 내가 몰인격한 당신을 기다린다는 것. 당신을 테두리 안에 집어넣으려 한다는 것.창문이 흔들릴때마다 나는 내 인생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불행의 냄새가 나는 것들 하지만 죽지 않을 정도로만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합성인간의 그것처럼 내 사랑은 내 입맛은 어젯밤에 죽도록 사랑하고 오늘 아침엔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는 것. 살기 같은 것 팔 하나 다리 하나 없이 지겹도록 솟구치는 것.불온한 검은 피, 내 사랑은 천국이 아닐 것 ==사실 내 방의 창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창이 적당하게 크고 오후 느지막이는 햇살이 들이치며 열어두면 선선한 산바람이 들어오는 게 마음에 ..
산보다 바다 마음이 산란할 땐 불을 꺼둔다. 환한 빛은 부끄럽다. 방에 있는 모든 불을 다 껐지만, 밤새 창으로는 가로등 빛이 들이쳤다. 주홍빛 그림자가 옹색하고 어두운 방에 있는 가구들의 배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냉장고의 검은 실루엣이 보인다. 문득 손을 뻗어도 냉장고가 닿지 않는다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작은 몸 하나로 이렇게 넓은 공간을 꿰차고 살아가는 인간이 혐오스럽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스트레칭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불평했던 그 원룸이다.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열대야도 아닌데 밤새 뒤척이기만 했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후회하는 일들이 늘어만 갔다. 좋아하던 것들은 전부 사라져만 가는데,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에는 내 머뭇거림이 너무 컸다. 나를 훈육하고 자라게 만..
It was one of those madeleine moments. Mais, quand d’un passé ancien rien ne subsiste, après la mort des êtres, après la destruction des choses, seules, plus frêles mais plus vivaces, plus immatérielles, plus persistantes, plus fidèles, l’odeur et la saveur restent encore longtemps, comme des âmes, à se rappeler, à attendre, à espérer, sur la ruine de tout le reste, à porter sans fléchir, sur leur gouttelette presque impalpable, l’éd..
<세상의 모든 계절> 봄이다. 봄이 왔다. 용산에 벚꽃이 만발이다. 마시는 공기 속에 얼마간의 꽃내음이 섞인 듯한 기분이다. 요즘엔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의식하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또 한 번의 ‘모든 계절’이 지나갔을 뿐이지만, 그 감상은 내 유년시절과는 전혀 다르다. 어린 나에게 계절이란 이를테면 감정의 뒷 배경 같은 것이었다. 나는 변화하는 계절 앞에서 기쁘거나, 외롭거나, 때때로 설레었지만, 그 것은 계절과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나는 성가시고 귀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에는 모든 것이 계절이다. 공기도, 소리도, 풍경도, 사람도, 모든 것이 사계를 따라 떠나가고 돌아온다. 계절을 예민하게 의식하는 것.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철이 든다고 표현한다. 나는 예민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딜레탕트 공기가 건조하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물을 자주 들이키려 해보지만 어느 순간엔가 목마름에 익숙해져 있다. 매 순간 평가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자존감이 최저인지 스페이스 공감에서 이 나온다. 재즈바에 가고 싶어졌다. 누구랑 갔더라. 처음 갔던 에반스클럽의 작은 무대가 좋았다. 작은 테이블도 좋았고, 작은 술잔도 좋았다. 재즈의 계획된 우발성은 매혹적이었다. 나는 재즈가 좋았다. 재즈가 좋았고,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기분도 좋았고,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좋았다. 재즈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실은 그 날 이후 재즈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돌이켜 보건데 내 모든 은밀한 애착은 항상 그랬다. 나는 그저 젠체하는 딜레탕트 정도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어째서 어떤 것에는..
마담 보바리 그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정말 하잘것없고 공허한 경험이라는 사실은 우리 인생을 이어주는 사슬에는 항상 어느 한 고리가 빠져 있고 객관적 무의미와 순전히 주관적인 의미가 안겨주는 서글픔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아르놀트 하우저 "보바리는 바로 나다."라고 플로베르가 말했을 때, 그는 자기 경멸과 더불어 보바리에 대한 얼마간의 애착을 담으려 했을 것이다. 조야한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딘가 낭만적 전망을 꿈꾸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숙명이라면, 누군들 한번쯤 보바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현실로부터 도피해 다른 어떤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 보바리즘이라면, 소설이라는 형식이야말로 이미 보바리즘적 욕망을 체현하고 있는 구성물이다. 교양소설이 주관..
20100915 전화_ 그 사람이 내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 맞췄다. (몇 달 만인데도) 전화를 받자마자 뭐해요, 라고 물었더니 문원이구나, 하고 대답해 주었다. 서운했던 감정도, 침울해 있던 저녁도 흐물흐물 녹아버렸다. 안 그래도 5분 전에 생각났었다는 입 발린 말에도 잘도 넘어가 버렸다. 요즘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내가 걱정해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여기저기 잘 걸어 다닐 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을 때면 종종 떠오르곤 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의 피곤한 인상이 신경 쓰였는데, 요즘엔 전처럼 좀 장난끼 있게 웃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사악하던 송곳니. 누나와 추석에 할머니네 갈 약속을 잡았다. 밤늦은 전화였는데도 설계중이라 바쁘다고 했다. 요즘에도 야근을 많이 하는 걸까. 바뀐 번호를 가족에게 알려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