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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시험이 끝나고 오늘 헌법시간에 윤선생님께서 따끔한 말씀을 주셨다. “변호인의 마음으로 공부하라.” 결과에 치중한 수험중심의 공부방법에 대한 우려의 말이었다. 교수님들이 으레 하는 말씀 중 하나로 흘려버릴 수도 있었지만, 요즘 하던 고민과도 맞닿아 있어서 그런지 깊은 공감이 갔다. 특히 법학에 대한 호기심이랄지 열정 같은 것들이 점차 사그러들고 있는 요즘,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말이었다. 교과서를 읽을 때, 판례를 읽을 때 자꾸 수험적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이런 건 약술시험에 나올만 하지만, 저런 건 사례형으로 낼 수 없지, 제끼자. 뭐 그런 식. 내가 공부하는 것들을 나중에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내가 이 사례의 변호사라면 어떻게 논리를 구성했을 지 몰입해서 공부하려는 진정성이 부족했..
서문 읽기를 권함 서문 읽기를 권함. 독서는 고된 일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글자의 흐름 속에서 정신을 놓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건 고작 눈과 손가락뿐이라지만, 고도의 집중력으로 온몸의 기력을 쏟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잡생각의 수렁에 빠지기 일쑤다. 그렇게 서너 시간 집중해서 책을 읽고 나면 몸 곳곳이 쑤셔온다. 물론 집중해서 읽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게다가 경청할 만하다고 알려진 책들을 찾다보면 어찌나 두껍고 무거운지, 시작하기 전부터 엄두가 안 나는 때도 많다. 마음먹고 책을 읽겠다고 책상에 앉으면 30분도 지나지 않아 목과 허리가 아파오는 것 같다. 결국 침대에 엎드려 읽다가, 다시 누워서 읽다가, 벽에 기대어 읽는 식으로 정신없이 굴러다니게 된다. 책을 편하게 읽는 방법이 없을까. 빔프로..
심보선_ 식후에 이별하다 식후에 이별하다 / 심보선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아무리 휘저어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를테면 수저 자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흰죽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거리는 식당 메뉴가 펼쳐졌다 접히듯 간결하게 낮밤을 바꾼다 나는 저기 번져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질테니 그대는 남아 있는 환함 쪽으로 등 돌리고 열까지 세라 열까지 세고 뒤돌아보면 나를 집어 삼킨 어둠의 잇몸 그대 유순한 광대뼈에 물컹 만져지리라 착한 그대여 내가 그대 심장을 정확히 겨누어 쏜 총알을 잘 익은 밥알로 잘도 받아먹는 그대여 선한 천성의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테면 내가 죽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그대가 속으로 천천히 열까지 세는 소리 안 들려도 잘 들리..
카페에서 그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가만히 앉아보았다. 잔 속 얼음이 바스락 하고 무너졌다. 창밖으로는 진부한 풍경. 내손으로 찢어놓은 영수증을 조각조각 천천히 손에 모았다. 얼그레이가 차가웠다. 언젠가 약속을 말한 일이 있었다. 나란히 흙길을 걸은 날도 있었다. 모래사장이 펼쳐진다던 수풀길 끝에는 검은 진창 뿐이었지만, 와인이 서늘했으므로 마음에 들었다. 느리게 헤엄치는 잉어도 물을 지겨워하는 날이 올까. 그 날도 여름이었다. 거울못에 비친 뜨거운 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리 밑으로 침을 뱉고 싶었다. 삼류 소설쯤은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오랜만에 혼자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마스킹이 철저했다. 검은 화면에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한참을 의자에 파묻혀 있었다.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 카렌 암스트롱 붓다에 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다. 민법 공부가 지겨울 때마다 한 챕터씩 읽어나가고 있으니 일종의 취미생활인 셈이다. 공부와 진로의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었지만, 어느새 다소 진지한 독서로 이어지고 있다. 세 번째로 읽은 책은 로,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쓴 싯다르타의 전기이다. 이전에 읽은 책들과 달리 싯다르타의 생애에 보다 충실한 편이지만, 풍부한 종교학적 논의를 서술의 기본으로 삼고 있어서 불교의 현대적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부당하게) 제도화된 불교의 교리로부터 싯다르타 자신의 가르침을 분리하고, 싯다르타의 생애에 덧씌워진 초현실적 외피를 합리적인 시각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예컨대 붓다가야에서의 득도의 밤에 관한 의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니르바나에 ..
이 생에 구원은 없으리 이 생에 구원은 없으리 붓다를 읽어도 하수상하다. 제도화된 종교와는 생각을 섞을 수 없었고, 신앙 없는 불교읽기는 공허했다. 경청할 말은 많았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실천적이었으므로, 지적 허기는 채워주지 않았다. 하루하루 날아가버리는 삶을 뿌리내릴 단단한 토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삶을 평가할 척도 내지는 좌표랄까. 하루를 마무리하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내가 오늘 보낸 삶은 어떠했던가, 생각해보게 하는 기준 같은 것 말이다. 이룬 일 하나 없지만 충실한 기분이 드는 날이 있고, 하루종일 치열했어도 형편없이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런 막연한 느낌이 있을 뿐 도통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내게도 삶의 방향이나 속도를 설정할 지침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아마도 넓은 의미의 윤리..
간만의 기록 다시, 첫 중간고사가 끝났다. 열심히 하는 것과 마음을 비우는 것은 별문제다.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따르지 못한다. 나는 열심히 하지도, 마음을 비우지도 못한다. 후회하는 것과 나아지는 것 역시 별문제다. 아직은 후회를 놓지도 그렇다고 나아지지도 못한다. 日日新又日新. 내일이면 다시 월요일이다. 과제를 위해 을 읽었다. 좋은 책이다. 법조인을 꿈꾸는 모두에게 읽혀야 한다. 오랜만에 봉은사에 갔다. 비 온 뒤 절에서는 축축한 향이 났다. 알지도 못하는 한자를 떠듬떠듬 읽었다. 곧 부처님 오신 날이다. 몹시도 많은 등불이 몹시도 많은 희망을 처마에 널어두고 있었다. 나도 희망 하나쯤 널어볼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불자도 아닌 주제에 기복만 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재스님은 食 자제 못하면 法 자제..
근자의 식도락기 토속촌 삼계탕, 딘타이펑, 쟈니스 덤플링, 라셀티끄_ #후라이팬에 다진 마늘을 살살 볶는다. 마늘향이 기름에 충분히 배면 팬 전체에 두르고 얇게 썬 두부를 올린다. 두부가 노릇해질 즈음에 간장을 한술 끼얹는다. 뒤집어가며 두부를 충분히 익힌다. 짭쪼름하면서도 마늘의 풍미가 가득한 두부부침이 간단히 완성! 밥 없이도 포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고 부드럽게 소화도 잘 되니 야식으로는 딱이다. 반 모만 부쳐먹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먹다보니 한 모를 다 헤치우고 만다. 귀가길 마트에 들러 사온 두부가 고작 1300원. 소박하지만 행복한 야식이다. 오늘밤도 배부른 꿈을 꾼다. 꿀꿀. #며칠 전에는 이른바 ‘서울 3대 삼계탕집’ 중 하나라는 토속촌에 갔다. 흔히 신길동 호수삼계탕, 중구 고려삼계탕(강원정을 넣는 수도 있..